수건 인쇄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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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한 권의 무게가 한 사람 생의 무게만 할까? 이 물음이 결코 과장이 아닌 진실일 수 있는, 어쩌면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김준한, 그는 오랫동안 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살면서 손에서 시를 놓아본 적이 없다.

내가 그를 걱정하기 시작한 것은 시에 대한 사랑, 혹은 열정이 집착으로 흐르면서부터였을 것이다. 하지만 집착과 열정을 어찌 구별할 수 있을까? '나 여기 있소!'라고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한 편의 시를 기다리며 갈고 닦아온 시간들을 응원하고 축복해주지는 못할망정 어찌 비난할 수 있을까? 그의 첫 시집을 두 번 연거푸 읽고 난 뒤에 문득 찾아온 것은, 그의 고독에 나도 크게 한몫을 했다는 반성이었다.

주낙은 긴 낚싯줄에 여러 개의 낚시를 달아 고기를 잡은 기구다. "바늘 끝 휘어진 아픔"은 아무래도 사랑의 아픔이겠다. 방효필 시인은 추천사에서 "그에게 연시는 분위기 가득 잡은 진부한 것과는 결이 다르며, 그에게 연정은 가진 것 하나 없이 망망한 시간 속에 던져지는 그리움이고, 열정을 먹고 살아야 하는 노동 속에서 등을 벌겋게 태우는 시 작업이다"라고 상찬한다.

나는 그의 첫 시집에 추천사를 써주지 못했다. 그가 시집을 준비하기 전부터 부탁을 했지만 나는 사양하고 싶었다. 그의 시를 나보다도 더 깊이 이해하고 축복해준 이들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45세에 등단한 그는 결코 늦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시에는 세월 속 치열한 시 쓰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그의 시를 읽으면 그는 마치 시를 쓰기 위해 사는 사람 같다. 시련의 연속이었던 삶. 매년 겨울, 처참히 구부러진 자신을 다시 두둘겨 펴며 고독한 고배를 마셨을 것이다. 그러나 등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문단의 내로라는 상들을 수상하며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ㅡ김상언(아동 문학 이사, 시인)

'내로라'는 상도 받고, 선배 문인들의 찬사와 축복 속에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고 살다가 첫 시집까지 냈는데도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나에게 습작시를 보내온다. 이제 그를 떠날 때도 되었다. 그는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이제 그가 나의 스승이다. 시구 하나에도 적절한 비유와 상징을 고심하며 온 정성을 기울이는 그의 치열한 시정신과 적극적인 시적 표현들이 나의 안이함을 일깨운다.

그는 고되고 험한 일용직 노동 현장을 전전하면서 "세상은 추워서가 아니라/울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얼어붙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햇살보다 일찍 나온 용역사무소/에서 "타지인이란 이유로 순번이 밀리"는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한 주검을 만난다. 이런 일상 속에서의 자질구레한 일들이 그에게는 훌륭한 시적 소재감이다. 그를 문단의 샛별로 홀연 빛나게 한 시는 이렇게 갈무리 된다.

타일 위에 얼어붙은 설움,/숨결이 멎지 않은 티브이 속 앵커가/지난밤 동파된 사건의 유서를 읽었다//주검을 들 것에 얹어 방을 나오자//속 뜨거워진 수도꼭지 홀로 남아 흐느꼈다" - <철근공> 부분

수도꼭지만이 철근공의 죽음을 슬퍼해주는 것으로 끝맺음을 한 것은 현실의 냉혹함을 고발하면서도 따뜻한 배려를 장치한 탁월한 발상이라 하겠다.

그는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감사한다. 그래도 덜 부끄러운 시집을 내지 않았는가. 20살 첫 시집을 냈다면 지금 그 시집을 보고 얼마나 부끄러워했을까"라고 말한다. 이제 그 부끄러움은 내 몫이 되었다. 나는 그의 첫 시집을 통해 다시 일어설 생각을 한다.

김준한의 첫 시집 <눈물 위에 세우는 다리>에는 일상에서 사유를 뽑아낸 시편들, 철학적 사유가 깊은 시편들, 노동 현장에서 느낀 삶의 통찰력을 다룬 시편들, 서민의 애환을 다른 시편들, 서정성이 뛰어난 시편들 등이 고르고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다. 어느 한 편도 허투루 쓰지 않은 탄탄한 수작(秀作)들이다.

그는 어느 비 오는 날, 길에서 데려온 두 마리 유기견, 아롱이다롱이와 함께 좁은 셋방에서 살고 있다. 그들마저 없었다면 그의 고독은 한정도 없이 깊어졌을 것이다. 이번 시집에 아롱이다롱이에 관한 시가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대신 아롱이다롱이와 함께 사는 좁은 셋방에서 쓴 듯한 짧은 시 한 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려 한다.

그는 불우한 개인사로 인해 어쩌면 처음부터 '굽은 못'이었고, 그로 인해 "불혹이 다 되도록 어디 한 곳/깊이 박히지 못했"지만, 그는 자신의 불우를 시로 승화시켰다. "녹슬었어도 박힐 수 있어 다행이다/오랜 여정 해지고 실밥 닳은 사연 한 벌 걸어 둘 수 있으니,//나는 아직 쓸모 있는 몸(못의 노래)"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별을 가진 사람들은 more info 중력에 수긍하며 산다/그래서 한 사람이 한 사람에 닿으려면/별과 별 사이에 드리운 허방을 건너야(우주를 건너는 일)" 하는 것을 아는 시적 내공이 만만치 않은 천상 시인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나에게는 '종기' 같은 존재였다. 귀찮고 아프고 내 삶에서 제발 사라져주길 바랐던. 이 글을 읽으면 그는 섭섭해하기는커녕 씩 웃고 말 것이다. 그의 첫 시집에 실린 시다.

샤워하다 발견한 어깨 위의 종기/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듯 붉어졌다./냉정히 돌아서던 세상을 향해/다 뱉지 못하고 삼킨 언어처럼/마음속을 배회하다 부풀어진,/출구를 찾지 못한 꿈들이/결집하여 이룩한 침묵의 집//(...)//도드라진, 시간의 집들이 있어/지금 이 순간에도 곪아가고 있을 것이다/아직 멀었다, 내일을 기약하는 꿈들/그 모반의 날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 시 <종기> 부분

몸에 난 종기조차도 시의 소재로 삼고 마는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내가 소속한 문학단체에서 주관하는 문학아카데미 시창작 교실에서였다. 그가 스물 두세 살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를 매개로 선생과 제자로 만난 세월이 스물다섯 해가 넘어간다. 그는 처음부터 싹이 보이는 연습생이었다. 이번 첫 시집에도 관념이나 감상이 아닌 삶의 구체성을 드러내는 빼어난 시편들로 가득하다.

김준한의 시는 주로 고단하고 가파른 삶의 갈피에서 나온다. 그는 어느 허름한 여인숙이나 여관방이었을 싶은 곳에서도 "방바닥 한편, 그가 버리고 간 이불을 개며 문득, 뒤척였던 어제를 생각"하고, 그 "새벽, 허한 가슴으로 스민 서늘함이 짙어질수록 괜시리 꽉 끌어안게 되는, 이 낡은 생 한 벌!(이불을 개며)"이라는 범상치 않은 표현을 얻어낸다. 일용직 이국 노동자를 대하는 그의 시선도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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